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히트 노런 (문단 편집) === 이야깃거리 === * 수학적으로 노히트 노런을 할 최대의 확률을 계산해보면, 투수가 타자를 상대하여 안타를 맞지 않고 아웃시킬 확률을 평균 75%라고 가정하고(볼넷이나 실책으로 인한 주루 제외)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야 하므로 27C0 × (0.75)^^27^^가 된다. 이는 약 0.0423%이다. 한편 0.0423%는 대략 2364경기 중 한번이고 시즌 720경기 및 포스트시즌 포함 기준으로 약 3년에 한번 꼴이다. * [[한국야구사|대한민국 야구역사]]에서 기록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 노히트 노런은 1935년 6월 22일 연전구장에서 휘문고보의 투수 송재경이 배재고를 상대로 거둔 노히트 노런이다. 7이닝(13:0으로 승리하면서 콜드게임 선언)5사사구 1실책을 기록. * KBO리그에서 최초의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운 투수는 [[1984년]] 대 [[삼미 슈퍼스타즈|삼미]]전에서 [[해태 타이거즈]]의 [[방수원]]. 그가 그 시즌 기록한 유일한 1승이 바로 이 노히트 노런이었다.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이 경기 하나로 남기게 되었다. * [[1986년]] [[카나이 마사유키|김정행]]은 [[빙그레 이글스]]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다. 당시 [[빙그레 이글스|상대팀]] 감독이었던 [[배성서]] 감독 말로는 사사구를 8개나 허용했다고 하는데,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6060600209205010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6-06-06&officeId=00020&pageNo=5&printNo=19901&publishType=00020|당시 동아일보 기사]]나 KBO 레코드북에 따르면 사사구 4개만 허용했다고 나온다. * [[1988년]] [[OB 베어스]]의 [[장호연]]은 첫 '개막전 노히트 노런'이자, '무탈삼진 노히트노런'을 기록했다. 이날 경기에서 장호연은 볼넷 1개와 몸에 맞는 공 2개를 허용하고 28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 없이 범타로 잡았다. 투구수 99개로 역대 최소투구 노히트 노런도 이 경기에서 나왔다. 장호연은 평소 "공 세 개로 삼진잡는 것보다 공 하나로 맞춰 잡는 게 효과적인 투구다"라고 말하는 등 독특한 관념을 지녔다. 다른 투수가 이게 좋은 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던져서 좋은 성적을 못내니까 안하는 건데 이걸 실전에서 해낸 것이다. * [[1988년]] 이동석은 [[선동열]]을 상대로 '''무[[사사구]]'''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지만, 두 개의 실책으로 주자가 출루하며 퍼펙트 게임은 달성하지 못했다. 실책을 범한 선수는 '''[[장종훈]]'''과 '''[[강정길]]'''이었다. 7회와 8회에 유격수 장종훈이 1루수 강정길에게 던진 공이 뒤로 빠졌는데 7회는 장종훈, 8회는 강정길의 실책으로 기록되었다. 그러나 퍼펙트를 깬 장종훈을 탓할수도 없는게 당시 유일한 득점이 장종훈이 3루타 치고 나가서 견제구 미스로 득점한 것이다. 한편 이동석은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 이 날 노히트 노런을 떠올리면서 "[[해태 타이거즈|해태]] 선발은 [[선동열]]이고 [[빙그레 이글스|상대]] 선발은 '''[[본인|나라고]]''' 그러니까 해태 타자들이 전날 맘놓고 '''[[술]]'''을 엄청나게 마셔서 그런 거다."라고 둘러대기도 했다. 진실은 저 너머에.[* 당시 기준으로 이동석은 전해 데뷔 시즌에 1승에 6.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을 뿐인 2년차 투수였고, 뿐만 아니라 [[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|군산상고]] 출신임에도 고향팀인 '''[[해태 타이거즈|해태]]'''의 지명을 받지 못해 [[빙그레 이글스|빙그레]]로 입단했기 때문에 해태 선수들에게 얕보였을 가능성은 있다.] * [[1990년]] 대졸 신인 [[이태일]][* [[NC 다이노스]]에 있는 그 이태일과는 [[동명이인]]이다.]은 2군 경기에서, 팀 사상 첫 노히트 노런이자, 신인 첫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. * [[1993년]] [[김원형]]은 [[OB 베어스|OB]]전에서 만 20세 9개월 25일로 '''최연소'''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다. 이 기록은 아직도 안 깨지고 있는 그야말로 '''불멸의 기록'''이다. * [[1993년]] [[5월 13일]] 롯데의 [[박동희(야구선수)|박동희]]는 쌍방울전에서 스코어 4:0, 노히트 노런으로 승리했지만 6회 강우콜드로 승리했기 때문에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.[* 다만, '''[[완봉승]]'''은 챙겼다.] * [[1996년]] [[한국시리즈]]에서는 현대 유니콘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4차전에서 [[정명원]]이 2019년 현재까지 [[한국시리즈]] 유일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.[* 기타 기록으로는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'''[[배영수]]'''가 '''10이닝 노히트 노런'''을 달성했었으나 이후 강판되었고 결국 [[권오준|후속 투수]]가 안타를 맞으며, 당일 날의 경기는 물빠따 경기로 [[무재배|무승부]]로 끝났다. 공식인정도 되지 않는다.] * [[1997년]] 5월 23일 [[OB 베어스]] 對 [[한화 이글스]]의 대전 경기에서 [[정민철]]은 수비 실책도 아닌 '''낫아웃 출루'''로 한 명의 주자를 내보낸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. 8회초 1사 볼카운트 1B 2S에서 타자 [[심정수]]가 헛스윙한 공을 포수 [[강인권]]이 놓쳐서 심정수가 낫아웃으로 출루한 것이 OB의 유일한 출루였다. [[심정수]]는 1루 베이스를 밟을 때의 소감을 '똥밟는 느낌이었다'고 술회했다. 당연히 강인권은 상당히 많이 까였다. 이 경기는 2021년까지 무려 '''25년 간''' KBO 역사상 가장 퍼펙트 게임에 가까운 경기로 남아 있었다. * [[2000년]] 송진우는 김정행이 갖고 있던 최고령 노히트 노런을 2개월 차로 새로 경신했다. 송진우의 기록 희생양이 된 [[해태 타이거즈]]는 창단 이후 최초로 [[5.18 민주화운동|5월 18일에 광주 홈경기를 치뤘는데]] 하필이면 이날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당했다. 사족으로 한화는 다음 날 현대전에서 [[박경완]]에게 사상 첫 '''4연타석 홈런'''이라는 대기록을 내주고 만다.[* 결국, 한화는 [[2017년|17년 뒤]] [[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|수원 구장]]에 [[kt wiz|어떤 팀]]을 상대로 팀 내 최고 [[윌린 로사리오|타자]]가 똑같이 재현을 했다. 물론 홈런 쳤던 그 팀과 맞은 팀은 같은 팀이 아니였을 뿐이다.] 또 해태는 7월 16일 [[현대 유니콘스]]의 선발 투수 [[김수경(야구)|김수경]]을 상대로 무안타로 꽁꽁 막혀있다가 9회말 1아웃에서 용병 타자 [[헤수스 타바레스]]가 '''[[번트]]'''로 내야안타를 만들어 기록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였다.[* 해태가 만약 당했다면 한 시즌에 노히트 노런을 2번 당하는 진기록을 세우는 것이었다. 그러나 타바레스의 번트 내야안타는 야구의 불문율을 깨는 것이었기에 논란이 되었다.] * [[2008년]] [[7월 4일]] [[삼성 라이온즈]] vs [[기아 타이거즈]]의 [[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|대구 구장]]에서 [[이범석(야구선수)|이범석]]이 9회말 2아웃 까지 노히터를 이어가고 있었으나 9회말 2아웃에 [[김주형]]의 안일한 수비로 내야안타를 허용[* 하지만 2021년 [[아리엘 미란다]]의 노히트 도전 당시 9회 2아웃 상황에서 [[김선빈]]의 타구를 포구조차 하지 못한 [[허경민]]을 생각하면 마냥 김주형을 깔 수만은 없다. 김주형은 2루타가 될 수도 있었던 타구를 그나마 단타로 막은 것이다.]하며 기록이 깨져 완봉승으로 만족해야 했다. 당연히 김주형은 모든 KIA 팬 커뮤니티에서 맹비난을 받았다. * [[2014년]] [[6월 24일]] [[NC 다이노스]]와 [[LG 트윈스]]와의 잠실 경기에서 찰리 쉬렉이 드디어 송진우 이후 14년만에 달성하였다. '''외국인 투수 1호'''기록도 가져가되었다. 2014년은 타고투저가 심한 시즌이라서 노히트 노런의 의미가 커 보였다. * [[2014년]] [[10월 6일]] NC 다이노스와 [[잠실 야구장|잠실]]에서 맞붙은 LG 트윈스는 선발 투수 신정락이 7⅓이닝 동안 무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다 오른손 중지 손톱이 들리는 바람에 통증을 호소하여 자진해서 마운드를 내려왔고, 뒤이어 나온 유원상과 신재웅이 나머지 1⅔이닝을 무안타 무사사구 1실책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후 9회말 [[이진영]]의 끝내기 안타로 스코어 1:0 승리를 거두면서 '''KBO 최초로 팀 합작 노히트노런'''을 작성했다. 약 석달 전에 찰리 쉬렉에게 당했던 복수를 톡톡히 한 셈이다. * 참고로, 이미 이보다 11년 전인 [[2003년]] [[3월 23일]], [[수원 kt 위즈 파크|수원구장]]에서 열린 [[현대 유니콘스]]와 [[한화 이글스]]와의 시범경기에서 [[이상목]]-[[김정수(1962)|김정수]]-[[안영명]]-[[레닌 피코타]]가 [[https://twitter.com/514_Bluegoliath/status/519121678576537600|팀 합작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적이 있지만]], '''시범경기이기 때문에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 않았다'''. 따라서 [[LG 트윈스]]가 거둔 팀 합작 노히트 노런이 KBO 최초의 팀 합작 노히트 노런 기록이다. * 한화 이글스는 이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3월 19일, [[한밭구장]]에서 열린 [[LG 트윈스]]와의 시범경기에서 또 팀 합작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으나 '''역시 시범경기이기 때문에 기록에 포함되지 않았다'''. 당시 투수는 [[조규수]]-[[정민철]]-[[김창훈]]-[[오봉옥]]. 다만 이로 인해 '''2년 연속 시범경기 합작 노히트 노런 달성'''이라는 꽤 흔치 않은 타이틀(?)은 갖게 되었다. * [[포수]]로서 노히트 노런을 두 번 경험한 [[KBO 리그|KBO]] 출신 선수는 [[2021년]] 현재 세 명이다. [[유승안]](1984년 방수원, 1988년 이동석), [[강인권]](1997년 정민철, 2000년 송진우), 그리고 [[양의지]](2015년 마야, 2016년 보우덴)가 그 주인공이다.[* 재밌는 점은 세 명 다 각각 인연이 있다. 유승안과 양의지는 양의지가 경찰청에서 군복무하던 시절 만나 양의지의 포텐을 터뜨리는데 유 감독이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고, 강인권과 양의지는 강인권이 두산 배터리코치를 맡던 시절 코치-선수 관계를 유지했다. 유승안과 강인권 역시 한화 시절 유승안이 코치, 강인권이 선수였다. 유승안은 해태와 빙그레에서, 강인권은 한화에서만 노히터를 경험했고, 양의지는 두산에서만 경험해 노히터를 기록한 시점에서의 소속팀은 각기 다르다.] * 외국인 투수 최초의 KBO 리그 노히트 노런 기록은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후로 16년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2014년에 가서야 [[찰리 쉬렉]]에 의해 처음 작성되었다. 흥미롭게도 찰리 쉬렉 이후 나온 3번의 노히트 노런 기록도 모두 외국인 선수가 기록했다는 것. 반면 한국인 투수의 KBO 리그 기록은 2000년 송진우 이후 명맥이 끊겨있다. * 외국인이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우면 롱런을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다. * 외국인 1호 기록은 [[2014년]]의 [[찰리 쉬렉]]인데, 다음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2015년 6월 [[웨이버 공시]]되었다. 욕설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. * 외국인 2호 기록은 [[2015년]]의 [[유네스키 마야]]인데, 기록을 세운 뒤 부진하더니 2015년 6월에 [[웨이버 공시]]되었다. 욕설 논란도 있었다. * 외국인 3호 기록은 [[2016년]]의 [[마이클 보우덴]]인데, 남은 정규시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, 그 해 [[탈삼진]]왕 타이틀까지 획득한다. 뿐만 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도 한국시리즈 3차전 MVP에 선정되는 등 큰 활약을 하며 팀 우승에 일조하고 우승 반지까지 얻었다. 그렇지만, 2017년 어깨충돌증후군으로 아파하면서 잦은 결장을 하더니 애매한 기록만 남기고 시즌 종료. 결국 국내리그와 결별했다. * 외국인 4호 기록은 [[2019년]]의 [[덱 맥과이어]]인데, [[카리대]]와 비교될 정도로 초반 부진을 겪다가 첫 승을 노히트노런으로 챙겼다. 초반 부진을 생각해보면 앞의 선수들과 마찬가지의 불명예가 예상되었고, 노히트 노런 기점으로 잠깐 반등하나 했으나 결국 부진과 부상으로 방출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